일상기록14 겨울이라는 시간 ■ 겨울이라는 시간 _ 가장 느린 계절이 마음을 데우는 방식 겨울은 늘 천천히 온다. 갑자기 추워진 것 같아도, 사실은 이미 여러 날 전부터 예고를 하고 있었던 계절이다. 해가 조금씩 짧아지고, 바람 끝이 날카로워지고, 저녁이 빨리 찾아오는 것. 우리는 그 신호들을 무심히 지나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제 겨울이네” 하고 말한다. 겨울은 그렇게, 이미 와 있었던 것처럼 시작된다.겨울의 아침은 유난히 조용하다. 창문을 열면 공기가 맑고 단단하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 안쪽까지 차가움이 닿는다. 이불 밖으로 나오는 일이 하루 중 가장 큰 결심이 되는 계절. 손을 내밀어 난방을 켜고, 두꺼운 양말을 찾고, 따뜻한 물로 손을 씻으며 몸을 깨운다. 겨울의 아침은 삶이 아직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겨울.. 2026. 1. 15. 식탁이라는 작은 세계 ■ 식탁이라는 작은 세계 ― 하루가 놓이고 마음이 차려지는 자리 식탁은 집 안에서 가장 낮은 목소리가 오가는 장소다. 누군가 크게 말하지 않아도,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도, 식탁 위에는 늘 하루의 흔적이 고요하게 놓인다. 밥그릇 하나, 수저 두 벌, 물컵에 맺힌 작은 물방울까지도 그날의 기온과 마음을 말없이 증언한다. 그래서 나는 식탁을 단순히 ‘밥을 먹는 가구’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하루가 가장 솔직해지는 자리, 사람의 마음이 가장 쉽게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아침의 식탁은 늘 서두른다. 빵 한 조각과 커피잔이 올려진 식탁은 아직 덜 깬 얼굴처럼 어딘가 허전하다.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아도 의자는 오래 머물 준비를 하지 않는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수저가 그릇에 닿는 소리.. 2026. 1. 13. 이별은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 이별은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이별은 한순간에 끝나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느리게 진행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흔히 마지막 대화나 마지막 인사를 이별의 시작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많은 신호가 쌓여 있었다. 말수가 줄어들고, 서로의 하루에 대한 질문이 형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이미 관계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우리는 그 변화를 애써 외면하며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 했을 뿐이다. 이별이 지나간 뒤에도 일상은 놀라울 만큼 그대로 이어진다.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길을 걷고,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한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살아가지만, 마음속에는 분명한 공백이 생긴다.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나누던 이야기들이 더 이상 갈 곳을 찾지 못하.. 2025. 12. 30. 버스 창가에 앉아, ■ 버스 창가에 앉아, 하루를 건너다 버스는 언제나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움직이지만, 그 안에 탄 사람들의 목적지는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출근길이고,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며, 누군가는 잠시 생각을 쉬게 하러 오른 자리일지도 모른다. 버스는 그렇게 서로 다른 하루들을 한 칸의 공간에 담아 이동한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묘하게 느리다. 멀리서 번호판이 보이면 마음이 조금 급해지고, 문이 열리는 순간 숨을 고른다. 버스에 오르는 짧은 동작 안에는 오늘의 기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급하게 올라탄 날도 있고, 천천히 발을 옮긴 날도 있다. 그 차이는 하루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말해준다. 버스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창가다.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은 끊임없이 바뀌.. 2025. 12. 30. 일기_하루를 다시 불러오는 일 ■ 일기_하루를 다시 불러오는 일 일기는 하루가 끝나갈 즈음, 조용히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날보다, 아무 일도 없었던 날에 더 필요해지는 기록. 일기를 쓴다는 것은 하루를 평가하기보다, 하루를 다시 한 번 살아보는 일에 가깝다. 일기장은 늘 솔직함을 요구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문장이 아니기에, 꾸밀 필요도 설명할 필요도 없다. 오늘 기분이 어땠는지, 무엇이 마음에 걸렸는지, 왜 괜히 피곤했는지. 일기 앞에서는 애써 괜찮은 척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일기는 가장 사적인 글이면서도, 가장 정직한 기록이 된다. 어떤 날의 일기는 길고, 어떤 날의 일기는 한 문장으로 끝난다. “오늘은 그냥 그랬다.”라는 문장 하나만 적혀 있어도 충분하다. 그 문장 속에는 말로 다 풀어내지 못.. 2025. 12. 30. 친구라는 이름의 거리 ■ 친구라는 이름의 거리 친구는 늘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걷는 사람들이다. 너무 멀어지면 남이 되고,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숨결이 버거워진다. 그래서 친구라는 관계는 늘 미묘하다. 잡히지 않을 만큼의 거리, 그러나 놓치지 않을 만큼의 온기를 유지하는 일. 그 균형이 친구를 친구로 남게 만든다. 어릴 적의 친구는 대부분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같은 교실, 같은 골목, 같은 시간표 속에서 자연스럽게 엮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매일 만났고, 헤어질 이유 또한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우정은 노력하지 않아도 유지되었고, 서로의 변화에 대해 깊이 묻지 않아도 충분했다. 우리는 그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친구의 모습도 달라진다. 각자의.. 2025. 12. 30.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