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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버스 창가에 앉아,

by napigonae 2025. 12. 30.

 

 

■ 버스 창가에 앉아, 하루를 건너다

 

버스는 언제나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움직이지만, 그 안에 탄 사람들의 목적지는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출근길이고,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며, 누군가는 잠시 생각을 쉬게 하러 오른 자리일지도 모른다. 버스는 그렇게 서로 다른 하루들을 한 칸의 공간에 담아 이동한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묘하게 느리다. 멀리서 번호판이 보이면 마음이 조금 급해지고, 문이 열리는 순간 숨을 고른다. 버스에 오르는 짧은 동작 안에는 오늘의 기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급하게 올라탄 날도 있고, 천천히 발을 옮긴 날도 있다. 그 차이는 하루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말해준다.

 

버스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창가다.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그 변화에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다. 지나가는 건물과 사람들, 신호등과 가로수는 모두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장면들이다. 그래서 버스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생각이 자연스럽게 느슨해진다. 오늘 하지 못한 말, 미뤄둔 계획, 이유 없이 쌓인 감정들이 유리창 너머로 조금씩 흘러간다.

 

버스는 유난히 조용한 이동 수단이다. 많은 사람이 타고 있지만, 각자는 이어폰을 꽂거나 창밖을 보거나 눈을 감는다. 말은 줄어들고, 움직임도 최소화된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불편해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서로의 삶을 침범하지 않는 거리. 버스는 그 균형을 가장 잘 유지하는 장소다.

 

가끔은 버스에서 스스로를 낯설게 마주한다. 창문에 비친 얼굴이 생각보다 피곤해 보이거나, 괜히 멍해 보일 때가 있다. 그 모습이 싫지 않다. 버스 안의 나는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고, 아무 역할도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잠시 머무는 사람일 뿐이다.

 

정류장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다시 바빠진다. 벨을 누르고, 자리를 정리하고, 문이 열릴 준비를 한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우리는 다시 각자의 세계로 흩어진다. 같은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과 아무 인사도 없이 헤어지지만,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다. 잠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버스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일상을 무사히 통과하게 해준다. 매일 같은 노선, 같은 정류장, 비슷한 풍경.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하루를 견디고, 다음 하루로 이동한다. 버스는 삶의 중요한 장면보다, 그 사이를 묵묵히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버스를 타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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