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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이별은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by napigonae 2025. 12. 30.

 

 

■ 이별은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이별은 한순간에 끝나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느리게 진행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흔히 마지막 대화나 마지막 인사를 이별의 시작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많은 신호가 쌓여 있었다. 말수가 줄어들고, 서로의 하루에 대한 질문이 형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이미 관계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우리는 그 변화를 애써 외면하며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 했을 뿐이다.

 

이별이 지나간 뒤에도 일상은 놀라울 만큼 그대로 이어진다.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길을 걷고,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한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살아가지만, 마음속에는 분명한 공백이 생긴다.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나누던 이야기들이 더 이상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웃음 뒤에 따라오던 공유의 순간들이 사라진다. 이별은 삶을 무너뜨리기보다, 삶의 구조를 미세하게 바꿔 놓는다.

 

가장 힘든 것은 사람 자체보다도 함께 형성된 습관이다. 하루의 끝에 떠오르던 이름, 별일 아닌 일에도 먼저 말하고 싶던 대상, 같은 방향을 보고 걷던 시간들. 이별은 그런 습관들을 하나씩 정리하게 만든다. 그래서 감정보다 먼저 몸이 반응한다.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들었다가 멈추고, 어떤 장소 앞에서 이유 없이 발걸음을 늦추게 된다. 이별은 마음보다 몸이 더 오래 기억하는 일이다.

 

이별 이후의 감정은 일정하지 않다. 어떤 날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하루를 보내고, 어떤 날은 사소한 장면 하나에 쉽게 무너진다. 이미 끝난 일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감정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스스로를 다그친다. 왜 아직도 힘든지, 왜 이렇게 오래 아픈지. 하지만 이별에는 정해진 회복의 속도가 없다. 각자의 마음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건넌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 질문의 방향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왜 끝났는지를 반복해서 묻게 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관계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나의 모습, 그 시간을 통해 배운 감정의 깊이와 한계. 이별은 지나간 사랑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랑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를 정직하게 마주하게 한다.

 

이별을 겪으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누군가를 얼마나 깊이 믿을 수 있었는지, 또 얼마나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혼자가 되었을 때 자신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이별은 관계의 끝이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더 이상 기대거나 의지할 대상이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책임지게 된다.

 

어느 날 문득, 이별이 덜 아프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완전히 잊어서가 아니다. 여전히 기억은 남아 있고, 어떤 장면들은 여전히 선명하다. 다만 그 기억들이 더 이상 현재의 나를 붙잡지 않는다. 떠올려도 숨이 막히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생긴다. 이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감정의 형태를 바꿔, 조용한 기억으로 남는다.

 

이별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혼자인 시간을 충분히 보내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고, 같은 기준으로 관계를 바라보지 않는다. 이별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고, 더 조심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 변화는 상처이면서 동시에 성장의 흔적이다.

 

이별은 끝이 아니다. 하나의 장이 마무리되고, 다른 장으로 넘어가는 지점일 뿐이다. 우리는 이별을 통해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를 배운다. 그리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어떤 시간을 지나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이별은 우리를 데려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게 만든다.

 

이별이 지나간 자리에는 여전히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너진 채로 남아 있지도 않다. 이별은 나를 정의하지 않았고, 나의 전부가 되지도 못했다. 결국 남는 것은, 그 시간을 지나온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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