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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겨울이라는 시간

by napigonae 2026. 1. 15.

 

 

■ 겨울이라는 시간 _ 가장 느린 계절이 마음을 데우는 방식

 

겨울은 늘 천천히 온다. 갑자기 추워진 것 같아도, 사실은 이미 여러 날 전부터 예고를 하고 있었던 계절이다. 해가 조금씩 짧아지고, 바람 끝이 날카로워지고, 저녁이 빨리 찾아오는 것. 우리는 그 신호들을 무심히 지나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제 겨울이네” 하고 말한다. 겨울은 그렇게, 이미 와 있었던 것처럼 시작된다.

겨울의 아침은 유난히 조용하다. 창문을 열면 공기가 맑고 단단하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 안쪽까지 차가움이 닿는다. 이불 밖으로 나오는 일이 하루 중 가장 큰 결심이 되는 계절. 손을 내밀어 난방을 켜고, 두꺼운 양말을 찾고, 따뜻한 물로 손을 씻으며 몸을 깨운다. 겨울의 아침은 삶이 아직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겨울의 색은 흰색만이 아니다. 회색 하늘, 검은 나뭇가지, 어두워진 골목, 그 위에 켜지는 노란 가로등 불빛. 색은 줄어들지만 대비는 더 선명해진다. 여름에는 풍경이 많아 시선이 흩어졌다면, 겨울에는 비어 있는 만큼 하나하나가 또렷해진다. 그래서 겨울의 사진은 단순하지만 깊다. 불필요한 장식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들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실내로 들어간다. 카페의 문이 자주 열리고, 난로와 히터가 돌아가며, 창문은 닫힌다.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어깨를 움츠린 채 걷다 보면 모르는 사람과도 잠시 눈이 마주친다. 겨울은 외로운 계절로 불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온기를 나누는 계절이기도 하다. 장갑을 건네고, 핫팩을 나누고, 따뜻한 말을 더 자주 꺼내는 계절.

어릴 적 겨울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첫눈이 언제 올지, 눈이 오면 얼마나 쌓일지, 학교가 쉬지는 않을지. 눈이 오면 세상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소리가 줄어들고, 발자국만 남고, 평소 알던 길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바뀌었다. 그때의 겨울은 놀이였고, 설렘이었다. 차가움보다 재미가 먼저였던 계절.

하지만 어른이 된 후의 겨울은 조금 다르다. 첫눈보다 난방비를 걱정하고, 눈길보다 출근길을 먼저 떠올린다. 겨울은 더 이상 마냥 반갑지 않다. 몸은 쉽게 피로해지고, 해가 짧아진 만큼 마음도 빨리 어두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에는 다른 계절이 줄 수 없는 깊이가 있다. 빠르게 지나가지 않기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

겨울 밤은 특히 길다. 해가 지고 나면 창밖은 금세 어두워지고, 실내의 불빛만이 남는다. 이 시간에 우리는 하루를 되돌아본다. 괜히 지난 일을 떠올리고, 하지 못한 말을 생각하고, 이미 끝난 계절을 붙잡아 본다. 겨울의 밤은 반성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후회라기보다 정리에 가깝다. 봄을 맞이하기 전에, 마음을 한 번 접어 두는 과정.

겨울의 음식은 대부분 따뜻하다. 국물 있는 음식, 김이 오르는 찌개, 오븐에서 막 나온 빵. 겨울에는 음식을 통해 계절을 느낀다. 찬 음료보다 따뜻한 차를 찾게 되고, 한 끼를 먹어도 체온이 오르는 것이 중요해진다. 겨울의 식사는 단순한 섭취가 아니라, 몸을 돌보는 행위다. 그래서 겨울에 먹는 음식은 유난히 기억에 오래 남는다.

겨울을 견디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더 바쁘게 움직이고,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춘다. 어떤 이는 겨울을 싫어하지만, 어떤 이는 겨울에 가장 자신다워진다. 밖이 차가울수록 안쪽이 따뜻해지는 사람들. 겨울은 그런 사람들의 계절이다. 외부의 자극이 줄어드는 만큼, 내부의 목소리가 커지는 시간.

나는 겨울을 ‘멈춤의 계절’이라고 부르고 싶다. 멈춘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를 내려놓는 일이다. 나뭇잎을 모두 떨군 나무가 봄을 준비하듯, 겨울의 우리는 비워내는 연습을 한다. 관계도, 계획도, 감정도 잠시 정리해 둔다.

그래서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면 묘한 아쉬움이 남는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생각했고, 느꼈고, 견뎌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겨울은 지나가지만, 겨울 동안의 나는 남는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시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올겨울이 유난히 춥게 느껴진다면, 그만큼 많은 것을 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겨울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무엇을 데우고 있나요?”
그 질문에 답을 찾는 동안, 겨울은 이미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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