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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14

운동_ 느린 약속 ■ 운동_ 느린 약속 운동을 시작하는 이유는 늘 거창하지 않다. 건강을 위해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혹은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하지만 막상 운동화를 신는 순간, 이유는 곧 잊힌다. 남는 것은 오늘도 몸을 움직이겠다는 아주 단순한 선택 하나뿐이다. 운동은 그렇게 의지를 시험하기보다, 하루를 성실하게 통과하는 방법을 묻는 행위에 가깝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몸은 생각보다 솔직하다. 숨은 쉽게 가빠지고, 근육은 금세 신호를 보낸다. 어제와 같은 동작을 해도 오늘은 더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운동은 늘 현재의 몸 상태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운동 앞에서는 변명도 핑계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가능한 만큼만, 그러나 거짓 없이 움직이는 일. 그 정직함이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이다. 반복되는 동.. 2025. 12. 29.
책을 읽는 시간, ■ 책을 읽는 시간, 나는 잠시 다른 사람이 된다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지금의 나에서 잠시 벗어난다. 같은 의자에 앉아 있고, 같은 방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다. 책은 그렇게 조용히 사람을 데려간다. 소리도 없이, 약속도 없이. 다만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미 반쯤은 그 세계에 들어와 있다.어릴 적 책은 모험이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대신 만나게 해주었다. 책 속의 인물들은 나보다 먼저 울고, 먼저 실패하고, 먼저 용기를 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조금씩 삶의 예행연습을 했다. 현실에서는 아직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책 속에서는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어른이 된 지금, 책의 역할은 조금 달라졌다.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남긴다. 잘 살.. 2025. 12. 24.
크리스마스가 되면.. ■ 크리스마스가 되면, 조용히 생각나는 얼굴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도시는 유난히 밝아진다. 거리의 나무들은 하루아침에 빛을 두르고, 가게의 창문에는 작은 눈송이와 종 모양 스티커가 붙는다. 낮보다 밤이 더 긴 계절인데도, 이 시기만큼은 밤이 덜 어두워 보인다. 전구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해 환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어릴 적 크리스마스는 분명 ‘기다림’의 날이었다. 산타클로스가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 포장을 뜯는 순간의 설렘, 아침에 눈을 뜨면 베개 옆에 놓여 있던 작은 상자. 지금 생각하면 선물의 크기나 값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었다는 사실이 더 컸던 시간이었다. 그 마음은 오래 남았고, 물건은 어느새 사라졌다.어른이 된 후의 크리스마스는 조금 다르다. 기다림보다는 떠오르는 얼굴들이.. 2025. 12. 24.
우산 아래의 속도 ■ 우산 아래의 속도 비가 오는 날이면 가장 먼저 손에 쥐게 되는 것은 우산이다.우산은 특별한 물건이 아니지만, 비가 내리는 순간부터 하루의 태도를 바꿔 놓는다. 평소보다 걸음은 느려지고, 고개는 조금 숙여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발밑으로 내려오고, 그제야 길 위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와 빗방울이 만드는 작은 파문들이 눈에 들어온다.우산 아래에서는 말수가 줄어든다.빗소리가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명한 비닐우산 너머로 흐릿해진 세상은 마치 잠시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 덜 서두르고,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우산 하나가 만들어 주는 이 느린 속도가 의외로 마음에 든다.우산은 비를 완전히 막아 주지 않는다.바람이 불면 옷자.. 2025. 12. 23.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조용한 일이다.셔터 소리는 짧지만, 그 순간을 바라보는 마음은 오래 남는다. 처음 카메라를 들었을 때 나는 대상을 기록하고 있다고 믿었다. 풍경은 풍경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담아내는 일이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사진은 대상을 찍는 행위가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을 남기는 일이라는 것을.같은 장소를 여러 번 찍어도 사진은 늘 다르다.날씨 때문이기도 하고 빛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찍는 사람이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벼운 날의 사진은 여백이 많고, 생각이 많은 날의 사진은 유난히 그림자가 길다. 그 차이를 알아차리게 된 순간부터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 2025. 12. 23.
우체통 앞에서 멈춰 선 마음 ■ 우체통 앞에서 멈춰 선 마음 길을 걷다 보면 한 번씩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쁘게 지나치면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은 존재. 바로, 우체통이다. 빨간색이나 주황색으로 선명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은 도시의 풍경 속에서도 묘하게 따뜻한 기운을 풍긴다. 요즘 대부분의 소통이 스마트폰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우체통만큼은 여전히 ‘기다림’이라는 오래된 감정을 품고 서 있다. 나는 우체통 앞에 서면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진다. 누군가의 따뜻한 안부가 봉투 속에 담겨 이곳을 지나갔을까. 지금도 누군가는 손글씨로 마음을 적어 넣고, 설렘을 봉한 채 우체통의 입구에 조심스레 넣었을까. 우표를 붙이며 그 사람이 느꼈을 떨림, 주소를 적는 동안 떠올랐을 얼굴, 편지가 도착.. 2025.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