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3 우체통 앞에서 멈춰 선 마음 ■ 우체통 앞에서 멈춰 선 마음 길을 걷다 보면 한 번씩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쁘게 지나치면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은 존재. 바로, 우체통이다. 빨간색이나 주황색으로 선명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은 도시의 풍경 속에서도 묘하게 따뜻한 기운을 풍긴다. 요즘 대부분의 소통이 스마트폰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우체통만큼은 여전히 ‘기다림’이라는 오래된 감정을 품고 서 있다. 나는 우체통 앞에 서면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진다. 누군가의 따뜻한 안부가 봉투 속에 담겨 이곳을 지나갔을까. 지금도 누군가는 손글씨로 마음을 적어 넣고, 설렘을 봉한 채 우체통의 입구에 조심스레 넣었을까. 우표를 붙이며 그 사람이 느꼈을 떨림, 주소를 적는 동안 떠올랐을 얼굴, 편지가 도착.. 2025. 11. 24. 어른이 된 나에게 남은 작은 세계 ■ 어른이 된 나에게 남은 작은 세계 책상 한쪽에, 낡은 곰인형 하나가 있다.눈동자는 반쯤 닳아 있고, 털은 여기저기 뭉쳤다.그럼에도 나는 그 인형을 버리지 못한다.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온기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장난감은 놀이의 도구가 아니다.우리가 시간을 배우는 첫 번째 방법이다.어릴 때, 새 장난감을 손에 쥐면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느껴졌다.손끝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는 현실보다 크고 자유로웠다.고무냄새가 나던 로봇, 삐걱대는 플라스틱 인형, 작은 자동차 한 대가 만들어내던 우주는 그때의 나에게 완벽한 세상이었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장난감은 ‘어린 것의 상징’이 되었다.책상 위엔 인형 대신 스마트폰이, 마음속엔 상상 대신 현실의 계산이 자리 잡았다.“이제 그런 건 그만 놀아야지.”그 말.. 2025. 11. 4. 장미의 시간 >> 장미의 시간장미는 언제나 완벽함의 상징으로 불린다.짙은 색, 선명한 형태, 은은한 향기까지 — 그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장미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준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상처와 함께 있고, 향기는 금세 흩어진다.길을 걷다 붉은 장미가 피어난 담장 앞에서 발을 멈춘 적이 있다.햇빛을 머금은 꽃잎은 유리처럼 반짝였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모습은 잠시 멈춘 시간 같았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이미 몇몇 꽃잎은 가장자리부터 색이 바래 있었다. 완전한 아름다움의 이면에, 사라짐의 징후가 깃들어 있었다.장미는 피어남과 시듦을 동시에 품은 존재다.그 찰나의 생애 속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을 살아간다.그래서일까, 장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 2025. 10. 1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