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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어른이 된 나에게 남은 작은 세계

by napigonae 2025. 11. 4.

 

 

 

■ 어른이 된 나에게 남은 작은 세계

 

책상 한쪽에, 낡은 곰인형 하나가 있다.
눈동자는 반쯤 닳아 있고, 털은 여기저기 뭉쳤다.
그럼에도 나는 그 인형을 버리지 못한다.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온기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장난감은 놀이의 도구가 아니다.

우리가 시간을 배우는 첫 번째 방법이다.
어릴 때, 새 장난감을 손에 쥐면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느껴졌다.
손끝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는 현실보다 크고 자유로웠다.
고무냄새가 나던 로봇, 삐걱대는 플라스틱 인형, 작은 자동차 한 대가 만들어내던 우주는 그때의 나에게 완벽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장난감은 ‘어린 것의 상징’이 되었다.
책상 위엔 인형 대신 스마트폰이, 마음속엔 상상 대신 현실의 계산이 자리 잡았다.
“이제 그런 건 그만 놀아야지.”
그 말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 믿었지만, 가끔은 그 말이 나를 조금 메마르게 만든 것 같다.

가끔 장난감을 정리하다 보면, 손끝에 묻은 먼지가 이상하게 따뜻하다.
그건 단순한 물건의 기억이 아니라, ‘내가 나로 자라오던 시간의 조각’이다.
장난감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자라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변할 뿐이다.

어쩌면 장난감이란, ‘잃어버린 마음의 원형’을 보여주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작은 기차의 선로 위로 손가락을 대고 놀던 아이는 이제 출근길에 지하철을 탄다.
레고로 세상을 쌓던 아이는 이젠 현실의 벽을 쌓으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가끔, 어른이 된 우리가 잠시 멈춰 장난감 하나를 바라보는 순간,
그 안에서 다시 ‘놀이의 용기’를 발견할 수 있다.

놀이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리듬이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놀 줄 아는 사람’이 따뜻하다.
장난감은 그 마음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한때 너도 이렇게 웃었잖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낡은 곰인형을 버리지 않는다.
그건 단순히 추억이 아니라, 나를 이끌어온 시간의 온도이기 때문이다.
장난감은 결국,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순수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