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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글6

이별은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 이별은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이별은 한순간에 끝나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느리게 진행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흔히 마지막 대화나 마지막 인사를 이별의 시작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많은 신호가 쌓여 있었다. 말수가 줄어들고, 서로의 하루에 대한 질문이 형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이미 관계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우리는 그 변화를 애써 외면하며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 했을 뿐이다. 이별이 지나간 뒤에도 일상은 놀라울 만큼 그대로 이어진다.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길을 걷고,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한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살아가지만, 마음속에는 분명한 공백이 생긴다.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나누던 이야기들이 더 이상 갈 곳을 찾지 못하.. 2025. 12. 30.
버스 창가에 앉아, ■ 버스 창가에 앉아, 하루를 건너다 버스는 언제나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움직이지만, 그 안에 탄 사람들의 목적지는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출근길이고,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며, 누군가는 잠시 생각을 쉬게 하러 오른 자리일지도 모른다. 버스는 그렇게 서로 다른 하루들을 한 칸의 공간에 담아 이동한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묘하게 느리다. 멀리서 번호판이 보이면 마음이 조금 급해지고, 문이 열리는 순간 숨을 고른다. 버스에 오르는 짧은 동작 안에는 오늘의 기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급하게 올라탄 날도 있고, 천천히 발을 옮긴 날도 있다. 그 차이는 하루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말해준다. 버스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창가다.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은 끊임없이 바뀌.. 2025. 12. 30.
일기_하루를 다시 불러오는 일 ■ 일기_하루를 다시 불러오는 일 일기는 하루가 끝나갈 즈음, 조용히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날보다, 아무 일도 없었던 날에 더 필요해지는 기록. 일기를 쓴다는 것은 하루를 평가하기보다, 하루를 다시 한 번 살아보는 일에 가깝다. 일기장은 늘 솔직함을 요구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문장이 아니기에, 꾸밀 필요도 설명할 필요도 없다. 오늘 기분이 어땠는지, 무엇이 마음에 걸렸는지, 왜 괜히 피곤했는지. 일기 앞에서는 애써 괜찮은 척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일기는 가장 사적인 글이면서도, 가장 정직한 기록이 된다. 어떤 날의 일기는 길고, 어떤 날의 일기는 한 문장으로 끝난다. “오늘은 그냥 그랬다.”라는 문장 하나만 적혀 있어도 충분하다. 그 문장 속에는 말로 다 풀어내지 못.. 2025. 12. 30.
학교라는 이름의 시간 ■ 학교라는 이름의 시간 학교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 있지만, 그 안을 통과하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 학교는 처음 사회를 만난 장소였고, 누군가에게는 버텨야 했던 공간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끝내 이해받지 못한 채 지나온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시간을 배우는 법’을 처음 익혔다는 사실이다. 아침 종이 울리면 시작되는 하루, 교실 창으로 들어오던 빛의 각도, 책상 위에 늘어놓았던 연필과 공책들.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기 전에 기다림과 반복을 먼저 가르쳤다. 쉬는 시간은 늘 짧았고, 수업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길고 느린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자라는 법을 배웠다. 이해하지 못한 문제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법, 틀린 답을 지.. 2025. 12. 29.
소란스럽지 않아도 좋은 날 ■ 생일_소란스럽지 않아도 좋은 날 생일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매번 같은 얼굴로 오지는 않는다.어릴 적 생일은 기다림 그 자체였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날이 오기 전까지 몇 번이나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어 보았다. 케이크 위에 꽂힌 초의 개수는 곧 자랑이었고, 축하 노래는 세상에서 가장 크게 들렸다. 그날만큼은 내가 중심이 되는 기분이 분명히 존재했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일은 조용해졌다.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이 축하보다는 확인에 가까워졌고, 선물보다 안부가 더 고마워졌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잊고 있었다는 말로 하루가 지나가도 서운함을 크게 느끼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생일을 ‘기념일’이 아닌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일은 여전히 특별하.. 2025. 12. 23.
한 잔의 커피가 데려다주는 오후 ■ 한 잔의 커피가 데려다주는 오후 하루의 속도를 늦추고 싶을 때, 나는 커피를 찾는다.커피는 단지 카페인이 들어 있는 음료가 아니라,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게 해주는 하나의 의식이다.뜨거운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첫 모금을 입에 머금으면, 세상은 잠시 고요해진다.바쁜 생각들은 향기 속에서 조금씩 가라앉고, 지금 이 순간의 온도가 내 몸에 닿는다.커피의 향은 기억을 자극한다.어느 겨울날 친구와 나눈 대화, 낯선 도시의 작은 골목, 새벽의 조용한 작업실—모두 커피의 향과 함께 떠오른다.이렇듯 커피는 우리 일상의 배경음악처럼, 늘 곁에 있으면서도 존재를 과시하지 않는다.그저 스며들고, 머물고, 묵묵히 함께한다.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내게 작은 명상과도 같다.분쇄된 원두의 입자에 물을 붓는 순간, 세상의 소.. 2025.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