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일_소란스럽지 않아도 좋은 날
생일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매번 같은 얼굴로 오지는 않는다.
어릴 적 생일은 기다림 그 자체였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날이 오기 전까지 몇 번이나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어 보았다. 케이크 위에 꽂힌 초의 개수는 곧 자랑이었고, 축하 노래는 세상에서 가장 크게 들렸다. 그날만큼은 내가 중심이 되는 기분이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일은 조용해졌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이 축하보다는 확인에 가까워졌고, 선물보다 안부가 더 고마워졌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잊고 있었다는 말로 하루가 지나가도 서운함을 크게 느끼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생일을 ‘기념일’이 아닌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일은 여전히 특별하다.
그날은 지난 1년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잘한 일보다 미뤄둔 일들이 먼저 떠오르고, 이루지 못한 계획들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하지만 동시에 버텨낸 시간들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하루들 속에서,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왔다는 사실을 생일이 증명해 준다.
생일에 꼭 거창한 이벤트가 필요하지는 않다.
혼자 마시는 커피 한 잔, 평소보다 천천히 걷는 산책, 마음에 드는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오히려 그런 조용한 순간들이 나에게는 더 오래 남는다. 축하의 말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짧은 인사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사진을 한 장 남기는 이유도 비슷하다.
케이크보다 얼굴을, 풍선보다 표정을 기록하고 싶어서다. 그날의 나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지를 나중에라도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다. 생일 사진은 결국 나 자신에게 보내는 작은 편지 같다.
내년의 생일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을 수도 있고, 여전히 흔들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생일은 결과를 평가하는 날이 아니라,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날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매년 이 날짜를 조심스럽게 껴안는다.
오늘이 생일이라면, 축하받지 않아도 괜찮다.
대신 조용히 숨을 고르고, 지금의 나를 인정해 주었으면 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하루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생일은 그렇게, 소란스럽지 않아도 좋은 날이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우산 아래의 속도 (1) | 2025.12.23 |
|---|---|
|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0) | 2025.12.23 |
| 우체통 앞에서 멈춰 선 마음 (1) | 2025.11.24 |
| 고양이와의 하루, 조용한 위로를 주는 존재 (0) | 2025.11.12 |
| 여행_길 위에서 나를 다시 만나다 (0) | 2025.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