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우체통 앞에서 멈춰 선 마음

by napigonae 2025. 11. 24.

 

 

■ 우체통 앞에서 멈춰 선 마음

 

 길을 걷다 보면 한 번씩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쁘게 지나치면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은 존재. 바로, 우체통이다. 빨간색이나 주황색으로 선명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은 도시의 풍경 속에서도 묘하게 따뜻한 기운을 풍긴다. 요즘 대부분의 소통이 스마트폰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우체통만큼은 여전히 ‘기다림’이라는 오래된 감정을 품고 서 있다.

 

 나는 우체통 앞에 서면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진다. 누군가의 따뜻한 안부가 봉투 속에 담겨 이곳을 지나갔을까. 지금도 누군가는 손글씨로 마음을 적어 넣고, 설렘을 봉한 채 우체통의 입구에 조심스레 넣었을까. 우표를 붙이며 그 사람이 느꼈을 떨림, 주소를 적는 동안 떠올랐을 얼굴, 편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모든 것이 한 장의 종이에 담겨 우체통을 거쳐 세상 곳곳으로 흘러갔다.

 

 우체통은 그래서 단순한 수거함이 아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닿기 위해 거쳐 가는, 감정의 징검다리 같은 곳이다. 디지털로는 채워지지 않는 온기가 여전히 그 안에 있다. 편지가 발송되는 순간의 마음은 ‘전송’ 버튼을 누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편지엔 흔들리는 감정선이 잉크와 종이 위에 고스란히 남고, 우체통은 그 감정을 한 번 더 품어준다.

 

 어릴 적, 명절이면 멀리 사는 친척에게 편지를 보내던 기억이 난다. 우체통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혹시 편지가 잘 도착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손에 닿는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도 편지를 넣는 순간엔 묘한 성취감과 설렘이 있었다. 우체통의 입구에 봉투가 빨려 들어가는 그 짧은 순간, 마치 마음을 공중에 띄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우체통은 그런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더 이상 많은 편지를 받지 못해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양으로 사람들을 기다린다. 마치 누군가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품어보겠다는 듯이.

어쩌면 우체통은 ‘기다림’과 ‘성실함’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봉투가 들어오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 우체부가 와서 그 마음을 수거해 가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자리를 지키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빠름과 편리함이 지배하는 시대에, 우체통은 느림과 여유의 가치를 잊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연히 마주친 오래된 우체통 하나가 오늘의 나를 잠시 멈춰 세웠다. 나는 다시 편지를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오래 보고 싶은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우표처럼 붙이고, 전하고 싶은 마음 한 조각을 꺼내 적고 싶어진다. 이 모든 것이 더디더라도, 그래서 더 따뜻한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우체통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우리의 기억과 감정이 담긴 ’마음의 통로’이자, 잊고 지낸 사람에게 안부를 묻고 싶게 하는 오랜 친구 같다. 오늘 길에서 우체통을 마주하게 된다면, 잠시 멈춰 서서 그 고요한 기다림의 표정을 바라보기를. 어쩌면 당신의 마음속에서도 오래 묵혀둔 감정 하나가 조심스레 깨어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