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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블로그17

소란스럽지 않아도 좋은 날 ■ 생일_소란스럽지 않아도 좋은 날 생일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매번 같은 얼굴로 오지는 않는다.어릴 적 생일은 기다림 그 자체였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날이 오기 전까지 몇 번이나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어 보았다. 케이크 위에 꽂힌 초의 개수는 곧 자랑이었고, 축하 노래는 세상에서 가장 크게 들렸다. 그날만큼은 내가 중심이 되는 기분이 분명히 존재했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일은 조용해졌다.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이 축하보다는 확인에 가까워졌고, 선물보다 안부가 더 고마워졌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잊고 있었다는 말로 하루가 지나가도 서운함을 크게 느끼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생일을 ‘기념일’이 아닌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일은 여전히 특별하.. 2025. 12. 23.
우체통 앞에서 멈춰 선 마음 ■ 우체통 앞에서 멈춰 선 마음 길을 걷다 보면 한 번씩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쁘게 지나치면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은 존재. 바로, 우체통이다. 빨간색이나 주황색으로 선명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은 도시의 풍경 속에서도 묘하게 따뜻한 기운을 풍긴다. 요즘 대부분의 소통이 스마트폰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우체통만큼은 여전히 ‘기다림’이라는 오래된 감정을 품고 서 있다. 나는 우체통 앞에 서면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진다. 누군가의 따뜻한 안부가 봉투 속에 담겨 이곳을 지나갔을까. 지금도 누군가는 손글씨로 마음을 적어 넣고, 설렘을 봉한 채 우체통의 입구에 조심스레 넣었을까. 우표를 붙이며 그 사람이 느꼈을 떨림, 주소를 적는 동안 떠올랐을 얼굴, 편지가 도착.. 2025. 11. 24.
여행_길 위에서 나를 다시 만나다 ■ 여행_길 위에서 나를 다시 만나다 여행은 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를 데려다놓는다.떠나기 전에는 그저 ‘잠시 쉬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돌아올 때쯤엔 언제나 마음속 무언가가 달라져 있다. 낯선 길을 걷고,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며, 그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는 일. 그것이 내가 여행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길 위에서는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가방 속엔 꼭 필요한 것들만, 머릿속엔 ‘지금’이라는 순간만 남는다. 휴대폰 신호가 닿지 않는 작은 마을의 정적 속에서, 나는 세상의 소음이 얼마나 컸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 고요함이 내 안에도 스며든다.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맞이한 새벽.이른 햇살이 바다 위에 길게 떨어지고, 갈매기 한 마리가 물결 위를 스치며 날아간다. 그 장면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2025. 11. 11.
어른이 된 나에게 남은 작은 세계 ■ 어른이 된 나에게 남은 작은 세계 책상 한쪽에, 낡은 곰인형 하나가 있다.눈동자는 반쯤 닳아 있고, 털은 여기저기 뭉쳤다.그럼에도 나는 그 인형을 버리지 못한다.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온기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장난감은 놀이의 도구가 아니다.우리가 시간을 배우는 첫 번째 방법이다.어릴 때, 새 장난감을 손에 쥐면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느껴졌다.손끝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는 현실보다 크고 자유로웠다.고무냄새가 나던 로봇, 삐걱대는 플라스틱 인형, 작은 자동차 한 대가 만들어내던 우주는 그때의 나에게 완벽한 세상이었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장난감은 ‘어린 것의 상징’이 되었다.책상 위엔 인형 대신 스마트폰이, 마음속엔 상상 대신 현실의 계산이 자리 잡았다.“이제 그런 건 그만 놀아야지.”그 말.. 2025. 11. 4.
한 잔의 커피가 데려다주는 오후 ■ 한 잔의 커피가 데려다주는 오후 하루의 속도를 늦추고 싶을 때, 나는 커피를 찾는다.커피는 단지 카페인이 들어 있는 음료가 아니라,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게 해주는 하나의 의식이다.뜨거운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첫 모금을 입에 머금으면, 세상은 잠시 고요해진다.바쁜 생각들은 향기 속에서 조금씩 가라앉고, 지금 이 순간의 온도가 내 몸에 닿는다.커피의 향은 기억을 자극한다.어느 겨울날 친구와 나눈 대화, 낯선 도시의 작은 골목, 새벽의 조용한 작업실—모두 커피의 향과 함께 떠오른다.이렇듯 커피는 우리 일상의 배경음악처럼, 늘 곁에 있으면서도 존재를 과시하지 않는다.그저 스며들고, 머물고, 묵묵히 함께한다.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내게 작은 명상과도 같다.분쇄된 원두의 입자에 물을 붓는 순간, 세상의 소.. 2025.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