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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블로그17

운동_ 느린 약속 ■ 운동_ 느린 약속 운동을 시작하는 이유는 늘 거창하지 않다. 건강을 위해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혹은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하지만 막상 운동화를 신는 순간, 이유는 곧 잊힌다. 남는 것은 오늘도 몸을 움직이겠다는 아주 단순한 선택 하나뿐이다. 운동은 그렇게 의지를 시험하기보다, 하루를 성실하게 통과하는 방법을 묻는 행위에 가깝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몸은 생각보다 솔직하다. 숨은 쉽게 가빠지고, 근육은 금세 신호를 보낸다. 어제와 같은 동작을 해도 오늘은 더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운동은 늘 현재의 몸 상태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운동 앞에서는 변명도 핑계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가능한 만큼만, 그러나 거짓 없이 움직이는 일. 그 정직함이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이다. 반복되는 동.. 2025. 12. 29.
학교라는 이름의 시간 ■ 학교라는 이름의 시간 학교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 있지만, 그 안을 통과하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 학교는 처음 사회를 만난 장소였고, 누군가에게는 버텨야 했던 공간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끝내 이해받지 못한 채 지나온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시간을 배우는 법’을 처음 익혔다는 사실이다. 아침 종이 울리면 시작되는 하루, 교실 창으로 들어오던 빛의 각도, 책상 위에 늘어놓았던 연필과 공책들.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기 전에 기다림과 반복을 먼저 가르쳤다. 쉬는 시간은 늘 짧았고, 수업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길고 느린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자라는 법을 배웠다. 이해하지 못한 문제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법, 틀린 답을 지.. 2025. 12. 29.
책을 읽는 시간, ■ 책을 읽는 시간, 나는 잠시 다른 사람이 된다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지금의 나에서 잠시 벗어난다. 같은 의자에 앉아 있고, 같은 방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다. 책은 그렇게 조용히 사람을 데려간다. 소리도 없이, 약속도 없이. 다만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미 반쯤은 그 세계에 들어와 있다.어릴 적 책은 모험이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대신 만나게 해주었다. 책 속의 인물들은 나보다 먼저 울고, 먼저 실패하고, 먼저 용기를 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조금씩 삶의 예행연습을 했다. 현실에서는 아직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책 속에서는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어른이 된 지금, 책의 역할은 조금 달라졌다.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남긴다. 잘 살.. 2025. 12. 24.
우주를 올려다보는 밤 ■ 우주를 올려다보는 밤, 생각이 작아지는 순간 밤하늘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우주는 소리 없이 사람을 작게 만든다. 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그 침묵 속에서 생각은 끝없이 커졌다가 다시 조용히 접힌다. 낮 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걱정과 계획들은 별빛 앞에서 크기를 잃고, 결국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만 남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우주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는 늘 바쁜 이유로 하늘을 놓친다. 고개를 들 여유 없이 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밤이 깊어졌을 때에야 별 하나를 발견한다. 그 별이 수천, 수만 년 전의 빛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시간의 감각은 느슨해진다. 지금의 나를 괴롭히는 일들이 과연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2025. 12. 24.
크리스마스가 되면.. ■ 크리스마스가 되면, 조용히 생각나는 얼굴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도시는 유난히 밝아진다. 거리의 나무들은 하루아침에 빛을 두르고, 가게의 창문에는 작은 눈송이와 종 모양 스티커가 붙는다. 낮보다 밤이 더 긴 계절인데도, 이 시기만큼은 밤이 덜 어두워 보인다. 전구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해 환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어릴 적 크리스마스는 분명 ‘기다림’의 날이었다. 산타클로스가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 포장을 뜯는 순간의 설렘, 아침에 눈을 뜨면 베개 옆에 놓여 있던 작은 상자. 지금 생각하면 선물의 크기나 값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었다는 사실이 더 컸던 시간이었다. 그 마음은 오래 남았고, 물건은 어느새 사라졌다.어른이 된 후의 크리스마스는 조금 다르다. 기다림보다는 떠오르는 얼굴들이.. 2025. 12. 24.
우산 아래의 속도 ■ 우산 아래의 속도 비가 오는 날이면 가장 먼저 손에 쥐게 되는 것은 우산이다.우산은 특별한 물건이 아니지만, 비가 내리는 순간부터 하루의 태도를 바꿔 놓는다. 평소보다 걸음은 느려지고, 고개는 조금 숙여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발밑으로 내려오고, 그제야 길 위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와 빗방울이 만드는 작은 파문들이 눈에 들어온다.우산 아래에서는 말수가 줄어든다.빗소리가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명한 비닐우산 너머로 흐릿해진 세상은 마치 잠시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 덜 서두르고,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우산 하나가 만들어 주는 이 느린 속도가 의외로 마음에 든다.우산은 비를 완전히 막아 주지 않는다.바람이 불면 옷자.. 2025.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