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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장미의 시간

by napigonae 2025. 10. 12.

 

 

>> 장미의 시간

장미는 언제나 완벽함의 상징으로 불린다.
짙은 색, 선명한 형태, 은은한 향기까지 — 그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장미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준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상처와 함께 있고, 향기는 금세 흩어진다.

길을 걷다 붉은 장미가 피어난 담장 앞에서 발을 멈춘 적이 있다.
햇빛을 머금은 꽃잎은 유리처럼 반짝였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모습은 잠시 멈춘 시간 같았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이미 몇몇 꽃잎은 가장자리부터 색이 바래 있었다. 완전한 아름다움의 이면에, 사라짐의 징후가 깃들어 있었다.

장미는 피어남과 시듦을 동시에 품은 존재다.
그 찰나의 생애 속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을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장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인생도 결국 이와 다르지 않다.
화려함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것이 삶을 덜 값지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라짐이 있기에 매 순간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며칠 전 화병에 꽂은 장미가 서서히 시들어갔다.
시간이 지나며 향기는 옅어지고 꽃잎은 마르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처음에는 아쉬웠으나, 이내 낯선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마른 꽃잎의 질감과 색은 생화일 때와는 또 다른 온기를 지니고 있었다.
피어날 때의 화려함이 찰나의 아름다움이라면, 시들어가는 모습은 오래 남는 아름다움이었다.

장미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빛으로 피어나고 있는가.”
그 물음 앞에서 잠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도 피어남과 시듦은 반복된다.
새로운 일에 설레고, 익숙함 속에서 시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흐름이 모여 한 사람의 시간을 완성한다.

장미는 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계절 안에서 가장 충실히 피어날 뿐이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그 단순한 성실함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질 것을 알면서도, 오늘의 햇살 아래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나는 일.

창가에 두었던 장미는 이제 거의 말라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쉽게 버리지 못했다.
시든 장미를 바라보면 여전히 그 안에 시간이 머물러 있는 듯하다.
피어날 때의 생기, 사라질 때의 고요함 — 그 모든 순간이 ‘장미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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