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글4 식탁이라는 작은 세계 ■ 식탁이라는 작은 세계 ― 하루가 놓이고 마음이 차려지는 자리 식탁은 집 안에서 가장 낮은 목소리가 오가는 장소다. 누군가 크게 말하지 않아도,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도, 식탁 위에는 늘 하루의 흔적이 고요하게 놓인다. 밥그릇 하나, 수저 두 벌, 물컵에 맺힌 작은 물방울까지도 그날의 기온과 마음을 말없이 증언한다. 그래서 나는 식탁을 단순히 ‘밥을 먹는 가구’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하루가 가장 솔직해지는 자리, 사람의 마음이 가장 쉽게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아침의 식탁은 늘 서두른다. 빵 한 조각과 커피잔이 올려진 식탁은 아직 덜 깬 얼굴처럼 어딘가 허전하다.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아도 의자는 오래 머물 준비를 하지 않는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수저가 그릇에 닿는 소리.. 2026. 1. 13. 친구라는 이름의 거리 ■ 친구라는 이름의 거리 친구는 늘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걷는 사람들이다. 너무 멀어지면 남이 되고,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숨결이 버거워진다. 그래서 친구라는 관계는 늘 미묘하다. 잡히지 않을 만큼의 거리, 그러나 놓치지 않을 만큼의 온기를 유지하는 일. 그 균형이 친구를 친구로 남게 만든다. 어릴 적의 친구는 대부분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같은 교실, 같은 골목, 같은 시간표 속에서 자연스럽게 엮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매일 만났고, 헤어질 이유 또한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우정은 노력하지 않아도 유지되었고, 서로의 변화에 대해 깊이 묻지 않아도 충분했다. 우리는 그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친구의 모습도 달라진다. 각자의.. 2025. 12. 30. 하늘에 머무는 시간 _구름을 바라보기 ■ 하늘에 머무는 시간 _구름을 바라보기 어릴 적 나는 종종 구름을 바라보며 시간을 잃곤 했다.학교 운동장에서, 버스 창문 너머로, 혹은 잠들기 전 창문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때의 나는, 세상에 그 어떤 일보다 구름을 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구름은 단순히 하늘을 떠도는 수증기가 아니라, 매일 다른 얼굴로 세상을 위로하는 존재였다.지금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고, 구름을 보는 일은 어쩐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문득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나는 여전히 그때의 아이로 돌아간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며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빛의 변화 속에서, 삶의 속도가 조금 늦어져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는다.하늘 위의 구름은 늘 제멋대로다. 흘러가고, 흩어지고, 다시 모.. 2025. 10. 28. 장미의 시간 >> 장미의 시간장미는 언제나 완벽함의 상징으로 불린다.짙은 색, 선명한 형태, 은은한 향기까지 — 그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장미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준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상처와 함께 있고, 향기는 금세 흩어진다.길을 걷다 붉은 장미가 피어난 담장 앞에서 발을 멈춘 적이 있다.햇빛을 머금은 꽃잎은 유리처럼 반짝였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모습은 잠시 멈춘 시간 같았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이미 몇몇 꽃잎은 가장자리부터 색이 바래 있었다. 완전한 아름다움의 이면에, 사라짐의 징후가 깃들어 있었다.장미는 피어남과 시듦을 동시에 품은 존재다.그 찰나의 생애 속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을 살아간다.그래서일까, 장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 2025. 10. 1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