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에세이1 우산 아래의 속도 ■ 우산 아래의 속도 비가 오는 날이면 가장 먼저 손에 쥐게 되는 것은 우산이다.우산은 특별한 물건이 아니지만, 비가 내리는 순간부터 하루의 태도를 바꿔 놓는다. 평소보다 걸음은 느려지고, 고개는 조금 숙여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발밑으로 내려오고, 그제야 길 위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와 빗방울이 만드는 작은 파문들이 눈에 들어온다.우산 아래에서는 말수가 줄어든다.빗소리가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명한 비닐우산 너머로 흐릿해진 세상은 마치 잠시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 덜 서두르고,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우산 하나가 만들어 주는 이 느린 속도가 의외로 마음에 든다.우산은 비를 완전히 막아 주지 않는다.바람이 불면 옷자.. 2025. 12. 2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