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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세이16

운동_ 느린 약속 ■ 운동_ 느린 약속 운동을 시작하는 이유는 늘 거창하지 않다. 건강을 위해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혹은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하지만 막상 운동화를 신는 순간, 이유는 곧 잊힌다. 남는 것은 오늘도 몸을 움직이겠다는 아주 단순한 선택 하나뿐이다. 운동은 그렇게 의지를 시험하기보다, 하루를 성실하게 통과하는 방법을 묻는 행위에 가깝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몸은 생각보다 솔직하다. 숨은 쉽게 가빠지고, 근육은 금세 신호를 보낸다. 어제와 같은 동작을 해도 오늘은 더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운동은 늘 현재의 몸 상태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운동 앞에서는 변명도 핑계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가능한 만큼만, 그러나 거짓 없이 움직이는 일. 그 정직함이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이다. 반복되는 동.. 2025. 12. 29.
학교라는 이름의 시간 ■ 학교라는 이름의 시간 학교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 있지만, 그 안을 통과하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 학교는 처음 사회를 만난 장소였고, 누군가에게는 버텨야 했던 공간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끝내 이해받지 못한 채 지나온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시간을 배우는 법’을 처음 익혔다는 사실이다. 아침 종이 울리면 시작되는 하루, 교실 창으로 들어오던 빛의 각도, 책상 위에 늘어놓았던 연필과 공책들.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기 전에 기다림과 반복을 먼저 가르쳤다. 쉬는 시간은 늘 짧았고, 수업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길고 느린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자라는 법을 배웠다. 이해하지 못한 문제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법, 틀린 답을 지.. 2025. 12. 29.
책을 읽는 시간, ■ 책을 읽는 시간, 나는 잠시 다른 사람이 된다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지금의 나에서 잠시 벗어난다. 같은 의자에 앉아 있고, 같은 방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다. 책은 그렇게 조용히 사람을 데려간다. 소리도 없이, 약속도 없이. 다만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미 반쯤은 그 세계에 들어와 있다.어릴 적 책은 모험이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대신 만나게 해주었다. 책 속의 인물들은 나보다 먼저 울고, 먼저 실패하고, 먼저 용기를 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조금씩 삶의 예행연습을 했다. 현실에서는 아직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책 속에서는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어른이 된 지금, 책의 역할은 조금 달라졌다.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남긴다. 잘 살.. 2025. 12. 24.
우산 아래의 속도 ■ 우산 아래의 속도 비가 오는 날이면 가장 먼저 손에 쥐게 되는 것은 우산이다.우산은 특별한 물건이 아니지만, 비가 내리는 순간부터 하루의 태도를 바꿔 놓는다. 평소보다 걸음은 느려지고, 고개는 조금 숙여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발밑으로 내려오고, 그제야 길 위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와 빗방울이 만드는 작은 파문들이 눈에 들어온다.우산 아래에서는 말수가 줄어든다.빗소리가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명한 비닐우산 너머로 흐릿해진 세상은 마치 잠시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 덜 서두르고,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우산 하나가 만들어 주는 이 느린 속도가 의외로 마음에 든다.우산은 비를 완전히 막아 주지 않는다.바람이 불면 옷자.. 2025. 12. 23.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조용한 일이다.셔터 소리는 짧지만, 그 순간을 바라보는 마음은 오래 남는다. 처음 카메라를 들었을 때 나는 대상을 기록하고 있다고 믿었다. 풍경은 풍경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담아내는 일이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사진은 대상을 찍는 행위가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을 남기는 일이라는 것을.같은 장소를 여러 번 찍어도 사진은 늘 다르다.날씨 때문이기도 하고 빛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찍는 사람이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벼운 날의 사진은 여백이 많고, 생각이 많은 날의 사진은 유난히 그림자가 길다. 그 차이를 알아차리게 된 순간부터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 2025. 12. 23.
소란스럽지 않아도 좋은 날 ■ 생일_소란스럽지 않아도 좋은 날 생일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매번 같은 얼굴로 오지는 않는다.어릴 적 생일은 기다림 그 자체였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날이 오기 전까지 몇 번이나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어 보았다. 케이크 위에 꽂힌 초의 개수는 곧 자랑이었고, 축하 노래는 세상에서 가장 크게 들렸다. 그날만큼은 내가 중심이 되는 기분이 분명히 존재했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일은 조용해졌다.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이 축하보다는 확인에 가까워졌고, 선물보다 안부가 더 고마워졌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잊고 있었다는 말로 하루가 지나가도 서운함을 크게 느끼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생일을 ‘기념일’이 아닌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일은 여전히 특별하.. 2025. 12. 23.